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갑작스럽게 찾아온 감당하기 힘든 질병, 혹은 뼈저린 실패의 터널을 지날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흔하게 듣는 위로의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너무 사랑하셔서 더 크게 쓰시려고 훈련하시는 거야", "이 고난 뒤에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숨겨져 있을 거야"라는 이야기들입니다. 얼핏 경건해 보이는 이 위로들은 시간이 지나면 도리어 마음에 더 깊은 절망과 의문을 심어줍니다. '정말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이토록 잔인한 통증과 눈물을 직접 허락하신단 말인가?' 하는 영적 불신앙의 덫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손기철 장로님의 말씀치유 설교를 바탕으로, 하나님을 고난과 악의 주권적인 '원인자'로 오해하게 만드는 왜곡된 신앙관을 바로잡고, 고통당하는 우리 곁에 찾아오셔서 친히 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의 참되신 사랑의 성품을 발견하는 복된 시간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너를 사랑하셔서 이 고난을 주셨다"는 말의 신학적 거짓말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회복하고 고난의 실체를 바로 보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가슴속에 세워야 할 성경 구절은 요한복음 11장 35절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한복음 11:35)
손기철 장로님은 설교를 통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너를 징계하고 훈련하기 위해 고통과 질병을 주셨다"라고 너무나 쉽게 인과론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만약 어떤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에게 도덕적인 훈련을 시킨답시고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암을 이식시킨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명백한 아동학대이자 범죄입니다. 하물며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를 키우기 위해 질병과 아픔을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며 절대 생명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어둠과 악이 전혀 없으십니다. 이 땅의 모든 고난과 질병은 아담의 타락 이후 영적인 법을 어겨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면서 생겨난 저주의 결과물입니다. 고난의 원인을 하나님께로 돌리면 하나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영적 이미지를 훼손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고난을 내리시는 무서운 분'이 아니라, '우리를 죄와 저주에서 건져내시는 분'으로 바라보는 성품의 대전환을 경험해야 합니다.
2. 고난 속에서 함께 울고 계시는 주님을 만나는 3단계 원리
그렇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 한복판을 지나갈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고난의 주관자가 아닌 참된 조력자로 분별할 수 있을까요? 장로님의 치유 메시지에서 강조하는 3단계 영적 법칙입니다.
① 1단계: 내 마음을 억누르는 '왜곡된 하나님 이미지' 깨뜨리기
우리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반사적으로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하나님이 벌을 주셨을까?" 자책하곤 합니다. 이런 율법적이고 두려운 하나님 이미지는 사단이 정죄감을 심기에 가장 좋은 환경입니다. 주님은 내 죄를 쫓아다니며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에서 내 모든 죄 값을 단번에(Once for all) 사해주시고 완전히 의인 삼아주신 신실한 아버지이심을 먼저 마음으로 믿고 인정해야 합니다.
② 2단계: 나와 함께 아파하시며 눈물 흘리시는 예수님 바라보기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어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친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잠시 후 다시 살려내실 부활의 능력과 소망을 이미 가지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사랑하는 자들이 겪고 있는 죽음의 고통과 슬픔을 깊이 공감하시며 함께 울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 높은 곳에서 팔짱을 낀 채 우리의 고통을 지켜보고 계시는 방관자가 아닙니다. 고난 한복판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우시는 사랑의 본질이십니다.
③ 3단계: 고난조차도 축복으로 바꾸시는 주권적 섭리 신뢰하기
하나님은 결코 고난을 주시는 분이 아니지만, 우리가 겪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아픔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경륜(Providence) 속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 말씀대로, 사단이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심어둔 질병과 고통의 악한 상황들을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역이용하셔서, 결국에는 선을 이루고 우리를 단단한 예수의 군사로 빚어가십니다. 고난을 준 원인자가 아니라, 고난을 뒤엎어 가장 눈부신 은혜의 통로로 전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3. 고난 속에 들어오신 임마누엘의 하나님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신앙은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지 인간의 이성으로 구구절절 깨닫고 해명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통 한복판에 홀로 서 있을 때,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피조물의 아픔 속으로 걸어 들어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너보다 더 아파하고 있다"라고 위로해 주시는 임마누엘의 복음입니다.
오늘도 홀로 눈물지으며 "하나님은 왜 나를 이토록 차갑게 외면하시는 걸까" 하고 낙심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자책하는 것을 이 시간 즉시 멈추십시오.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 다 세고 계시며 우리의 상한 심령과 가장 가까이 계시는 사랑의 아버지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내 이성을 내려놓고 고난의 뱀의 꼬리를 잡으시는 주님의 완전하신 선하심을 그대로 선포하며 감사할 때, 고통의 사슬이 무너지고 막막했던 현실 너머에 준비된 초자연적인 부활의 축복이 여러분의 온 영혼육에 선명하게 경험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더 깊은 은혜를 사모하시는 분들을 위한 추천
이 글에서 다룬 고난의 진정한 원인과 악을 분별하고, 우리와 함께 눈물 흘리시며 고통의 한복판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성품을 배우고 싶으시다면, 아래의 손기철 장로님 공식 설교 영상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 말씀대로 살아내기: 저의 작은 실천 이야기
사실 저는 오랜 기간 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제 삶에 뜻하지 않은 어떤 환난이나 재정적 위기, 그리고 몸의 약함이 찾아올 때마다 무의식 중에 두려운 하나님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업의 어려움이나 예기치 못한 현실의 위기로 고통당할 때,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 혹독한 터널 속으로 내모셨을까?"라며 내심 서운함과 불신앙의 마음을 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손기철 장로님의 설교 말씀을 3년이 넘도록 간절하게 사모하며 들으면서, 제 영적인 무지와 하나님에 대한 엄청난 왜곡이 박살 나는 은혜의 대격변을 경험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성령님께서 제 심령 골수를 조명해 주셨을 때, 비로소 제가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진짜 제 마음의 실상을 마주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저를 일부러 아프게 하시고 고통 가운데로 밀어 넣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제 마음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던 세상적인 욕심과 맘몬의 정욕 때문에, 저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제 중심적으로 가공하고 왜곡하고 있었던 추악한 제 자아의 모습이었습니다.
돈과 성공, 생존에 가로막혀 정작 주님이 눈물 흘리시며 바라보시는 그 한 영혼 한 영혼의 소중함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물질의 사슬에 묶여 살아가던 저를 마주하게 하신 것입니다. 고통의 탓을 하나님께로 돌리며 피의자 취급했던 제 어리석음을 깨닫고 십자가 앞에 온전히 무릎 꿇었을 때, 비로소 제 뜻을 관철시키려던 고집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저를 고통에 방치하신 방관자가 아니셨고, 제 왜곡과 욕심을 깨뜨리시어 주님의 울고 계신 그 참된 성품과 따뜻한 심장을 알게 하시는 중이셨습니다. 고난을 주신 분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마침내 제 눈을 열어 주님의 참된 얼굴을 대면케 하신 위대한 사랑을 경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